부족을 이루어 초원에서 지내던 몽골인들은 칭기즈칸을 통해 통일된 몽골을 세웠습니다. 새로운 살 길 마련을 위해 몽골은 서하 공격을 시작으로 동서 교역로인 비단길에 있는 나라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하, 금, 서요, 호레즘 등을 모두 무찌르고 몽골은 비단길을 확보하였고 유럽 원정까지 하며 거대한 땅을 세계 최대 대제국을 만들었습니다.
1. 몽골 제국이 짧은 기간에 넓은 땅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1) 강력한 기병제도
몽골인들은 유목민이다보니 어릴 때부터 말을 타기 시작하였고 어른이 되면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갈때면 타고 있는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갈아타기 위해 기병들은 여러 마리의 말을 한꺼번에 끌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적군에게 화살 비를 퍼붓고 사라지다가 갑자기 기습하는 전술을 썼기에 적들은 패하기 마련이었습니다.
2) 천호제
천호제는 유목민들을 평소에 1,000가구 단위로 조직하여 운영하다가, 전쟁이 발생하면 그대로 군사 조직으로 활용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전 국민이 군인이고, 일상 생활 조직이 바로 군대가 되는 구조였습니다. 한 가구에서 1명씩 군사로 동원하면 1,000가구 단위에서는 1,000명의 기병을 거느린 군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00호 아래에는 100호, 100호 아래에는 10호 단위로 가구들을 묶어 호를 통솔하는 장을 두어 일상생활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3) 엄한 율법인 야사
야사라는 법을 통해 중범죄는 물론 윗사람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도 처벌하였습니다. 야사라는 법은 엄청 엄했기 때문에 처벌이 대부분 사형입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4) 역참
말이 하루 동안 달릴 수 있는 거리마다 역참을 두어, 말을 갈아타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통행증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관리의 명령을 전달하는 전량들은 역참에서 말을 갈아 타고 쉬지 않고 달려몽골 동쪽에서 서쪽 러시아까지 보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5) 출신을 가리지 않는 인재 등용
칭기즈 칸은 사람을 등용할 때 혈연보다는 충성심과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칭기즈 칸은 자신의 종이나 적군의 장수 등을 자신의 장수들로 두었던 것을 보면 몽골의 열린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민족 출신이라도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2. 몽골 제국의 번영
1) 칸이 다스리는 원나라와 네 개의 울루스로 구성된 몽골 제국
쿠빌라이와 제4대 칸인 뭉케가 남송을 공격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뭉케 칸이 죽게 되었습니다. 칸의 자리를 두고 쿠빌라이와 동생 아릭부케는 싸우게 되었고 결국 쿠빌라이가 제5대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271년 몽골 제국의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쿠빌라이는 자신이 직접 다스리는 울루스의 이름으로 원이라고 정했습니다.
몽골 제국은 땅이 워낙 넓다보니 혼자서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칭기즈 칸의 후손들이 총 5개의 울루스로 나누어서 다스리고 쿠빌라이는 동쪽을 직접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남송이 버티고 있었는데 수많은 성과 늪 때문에 몽골의 기병이 힘을 쓰지 못하자 쿠빌라이는 남송을 상대하려고 중국을 다스리는 데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울루스들은 몽골 제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나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1279년, 몽골 제국은 결국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정복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2) 몽골 제국의 보호 아래 상업이 크게 발달
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몽골 제국이었지만 몽골인이 100만 명이고, 중국인들이 1억 명이 넘다보니 그 정책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나라는 출신 민족에 따라서 4등급으로 나누어 관직 등용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나라의 중요한 직책은 1등급인 몽골인이 차지하였고 2등급인 색목인은 재정과 경제 일을 맡아 몽골인들을 돕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3등급 한인은 화베이 지역의 중국인, 거란, 여진 고려인, 4등급인 남인은 남송지역 출신 사람들이었습니다.
평범한 농민, 장인, 상인들은 살아가는데 별 차이가 없었고 장인을 잘 대우해주었기에 피지배 계층들은 수공업에 많이 종사하였다. 그래서 원나라는 상업이 계속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3. 최초의 지구촌 시대
몽골 제국은 비단길 주변의 도적들을 몰아내 상인들이 안전하게 교역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참을 설치하여 여행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게 만들어 마르코 폴로, 이븐바투타 같은 사람들이 몽골 여행이 안전하고 편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또한 바닷길을 따라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반도 상인들이 원나라로 왔는데 송의 시박사 제도를 이용하여 많은 수입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 여러 사상과 종교가 서로 어우러지게 되었고 다양한 언어의 회화책 등도 만들어지고 통역관들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동서 교류도 활발하여 로마 교황과 편지도 주고 받았습니다.
4. 몽골 제국의 쇠퇴
몽골 제국은 1300년대 들어서면서 100년간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나라 뿐만 아니라 몽골 제국의 여러나라들이 후계자를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났고 원나라 또한 황제 계승 문제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원나라 말기에는 정치가 매우 혼란해져서 26년동안 황제가 여덟뻔이나 바뀌기도 했습니다.
황족들은 사치가 심해졌고 지폐를 마구 만들어내 경제는 엉망이 되었고 자연재해까지 일어나 백성들은 동원되었으니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결국 반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368년 원나라는 결국 남인 반란군에 쫓겨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