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크 족이 세운 오스만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리고 지중해를 차지하면서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다양한 민족을 포용하는 정책을 통해 나라를 더욱 발전시켜 유럽을 벌벌 떨게 하는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내부 분열로 점차적으로 힘을 잃어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성장과 쇠퇴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스만 왕국을 세운 튀르크 족
튀크르 인들은 말을 타고 몽골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족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교가 대세이다 보니 유목 생활을 하던 튀르크 족도 중앙아시아 상인들로부터 자연스레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튀르크 인들은 천막집을 짓고, 가축을 키우다보니 가축을 먹일 풀을 찾아 서쪽으로 계속 이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튀르크 족은 소아시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하는 오스만 1세
튀르크 족의 한 부족에서 태어난 오스만 1세는 용감하여 전쟁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부족의 땅을 넓히고 튀르크 부족들을 하나로 묶어 1299년 오늘날의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이름을 오스만 왕국이라고 지었습니다.
오스만 1세는 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어 군대를 강력하게 훈련시켜서 날쌔고 용맹한 병사들을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나라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오스만 왕국 북서쪽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당시 비잔티움은 많은 전쟁을 하느라 나라의 힘이 약해진 상태였기에 오스만 1세는 비잔티움을 공격하여 땅을 넓혀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메메트 2세 황제
1453년, 오스만 제국의 황제 메메트 2세는 비잔티움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콘스탄티노플까지 정복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비단길과 지중해길을 잇는 길목이어서 이곳을 차지하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위를 당한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3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튼튼한 요새여서 오스만 병사들이 공격을 해와도 꿋꿋이 버티었습니다.
결국 메메트 2세는 3겹으로 된 성벽으로의 공격하기보다 성벽이 한겹으로 된 바다쪽을 공격하기로 하였습니다. 비잔티움 해군이 바닷길을 막아놓아 배가 지나갈 수 없자 당시 오스만 군대는 배를 끌고 산을 넘어갔습니다. 오스만 군대가 육지와 바다에서 한꺼번에 공격하자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는 죽게 되었고 병사들은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간 메메트 2세는 성 소피아 성당으로 가서 알라를 위해 기도하고 그곳을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황금 시대
1520년 쉴레이만 1세가 황제가 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세 대륙의 넓은 땅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 <쉴레이만 법전>을 만들었고 세금만 더 내면 이슬람교로 개종하길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안정되자 쉴레이만 1세는 유럽쪽으로 더 뻗어나가기 위해 헝가리를 먼저 공격하여 정벌하였습니다. 그 후 오스트리아 빈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유럽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리고 쉴레이만 1세는 지중해 무역로가 탐이나서 지중해 주변의 땅과 섬을 차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지중해 무역로를 통해 큰 돈을 벌고 있던 나라들은 지중해를 지키기 위해 동맹군을 만들어 군대를 보냈습니다. 군대의 규모는 유럽 동맹군이 훨씬 많았지만 오스만 함대는 유럽 함대가 좁은 해협에 갇힌 틈을 타 기습 공격을 하여 바닷길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스만 제국이 동서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특히 수도 이스탄불은 전 세계의 상인들이 모여드는 무역 도시가 되어 엄청난 규모의 시장에서 물건이 팔려나갔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쇠퇴
쉴레이만 1세가 죽자 오스만 제국도 점차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유럽은 점점 군대를 키워갔고 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지중해의 여러나라들이 지중해를 통해 무역을 하지 못하게 되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하였고 그 길을 통해 아시아, 아메리카와 활발한 무역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오스만 제국을 거쳐가지 않아도 되자 유럽 상인들은 점차 찾아오지 않게 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점점 가난해지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서쪽까지 차지하려고 하였고 이에 지중해를 지키려는 유럽의 나라들은 동맹을 맺었습니다. 1571년 오스만 제국과 유럽 동맹군은 레판토 앞바다에서 다시 싸우게 되었고, 유럽 동맹군이 오스만을 물리쳤습니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은 황제 자리를 놓고 다투는 내부 분열이 일기 시작했고, 1683년 오스만 제국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다시한번 패한 이후 유럽 동맹군에게 땅을 다시 빼앗기기 시작하여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오스만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리고 강대국으로 커나갔습니다. 신분에 상관하지 않고 능력이 있고 뛰어나면 관리에 등용하여 나라를 더욱 발전시켰고, 민족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두루 포용하며 민족을 하나를 묶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대제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