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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이슬람의 황금 시대

by 김나나씨 2022. 4. 9.

유목 부족으로 흩어져 살던 아라비아 반도는 630년 무렵 이슬람교를 믿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를 거쳐 800년 무렵, 이슬람 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바그다드는 손꼽히는 국제도시가 되었고 신문물 교류에 앞장섰습니다. 이슬람 문화는 오늘날 문명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1. 우마이야 왕조의 탄생(661년)

무함마드가 죽고 움마의 회의를 통해 선출되는 칼리프들이 이슬람을 이끌어갔지만 칼리프 자리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4대 칼리프인 알리가 살해당하고 우마이야 가문의 무아위야는 스스로 칼리프라고 선언해 버렸습니다.

무아위야는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여 수도를 메카에서 다마스쿠스로 옮겼고 아들에게 칼리프를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왕위를 세습하듯 아들에게 물려주자 알리의 지지자들은 알리의 둘째 아들인 후세인을 중심으로 반란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반란이 시작되기도 전에 계획을 눈치챈 칼리프는 후세인과 지지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카르발라의 참극>을 일으킵니다.

후계자 문제를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오자 우마이야 가문의 칼리프들은 정복 전쟁에 열을 올려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까지 공격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는 정복한 지역의 주민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세금을 거의 면제해줬고 정복한 지역의 문화도 인정해주었습니다.



2.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죽자 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높고 갈등이 벌어지면 종파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2가지 종파가 있는데 바로 시아파와 수니파입니다. 무함마드의 혈육인 알리와 그의 후손만 칼리프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종파를 시아파라고 부르고, 알리의 후손이 아니어도 신앙심만 깊다면 이슬람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하는 종파는 수니파라고 합니다.

 

현재 전세계 이슬람 신자들은 약 15억 정도 있는데 그 중에 85%가 수니파 신자들입니다. 이집트, 수단, 리비아, 차드, 오만, 아랍에미리트, 터키, 파키스탄 등이 수니파 국가들이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수니파 종주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3. 아바스 왕조의 등장(750년)

우마이야 왕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랍인 제일주의를 내세워 아랍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다보니 현지인 관리들은 사라져갔습니다.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세금을 거의 면제해주었기에 너도나도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자 세금이 부족해졌고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인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세금을 더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아랍인 정복자들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750년, 시아파와 페르시아 인들이 손을 잡고 아부 알 아바스라는 사람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바스는 스스로 칼리프 자리에 오른 뒤 우마이야 가문 사람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수파인 수니파의 지지을 얻기 위해 자신을 도와준 시아파도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 재상이 나랏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4. 세계의 중심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는 민족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게 살아가는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도시 바그다드를 건설하고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겼습니다. 제국의 한복판에 위치한 바그다드는 사방팔방 연결되기 좋은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무리하게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활발한 교역으로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아랍 상인들은 전세계를 누비며 무역 활동을 펼쳤고 세계 문화를 교류하는 역할도 해냈습니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들은 학문과 예술의 후원에 힘써 아랍 세계는 새로운 지식이 모이고 탄생하는 학문의 중심지 역할도 했습니다.

 

 

 

5. 이슬람 세계의 분열

넓은 땅을 칼리프 혼자 다스리기 어려워지자, 아바스 왕조 칼리프들은 지방 총독에게 자치권을 주고 세습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총독들은 제멋대로 왕처럼 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칼리프의 자리를 두고 왕자들 사이에 내분까지 벌어져 칼리프의 힘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총독들의 반란이 걱정된 칼리프들은 튀크르 인 노예 병사들로 맘루크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칼리프들은 맘루크에게 심하게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맘루크가 아바스 왕조의 중앙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900년에 들어선 아바스 왕조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시아파는 카이로를 수도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북아프리카에서 파티마 왕조를 세웠습니다. 우마이야 가문의 왕자는 이베리아 반도로 도망가서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아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모두 각자 칼리프라고 선언하였고, 이슬람은 파티마 왕조, 후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이렇게 3개로 분열되었습니다.